경주 첨성대
종목 국보 제31호
시대 신라
자료.사진출처 교과서여행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높이 9.17m의 원통형 모양을 하고 있는 천문관측대로 불리고 있다. 첨성대에 관한 주장은 하늘에 제사지내던 단, 오늘날 기상청과 같이 천문을 관측하던 관청 내부의 상징물 등 이견이 분분하나 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하던 천문대라는 주장이 가장 많다.1) 첨성대는 왜 만들었나? - 신라사람들의 생계수단은 대부분이 농사이다. 따라서 천문을 관측하는 것은 백성들에게 아주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며 왕은 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었다. ..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높이 9.17m의 원통형 모양을 하고 있는 천문관측대로 불리고 있다. 첨성대에 관한 주장은 하늘에 제사지내던 단, 오늘날 기상청과 같이 천문을 관측하던 관청 내부의 상징물 등 이견이 분분하나 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하던 천문대라는 주장이 가장 많다.

1) 첨성대는 왜 만들었나? - 신라사람들의 생계수단은 대부분이 농사이다. 따라서 천문을 관측하는 것은 백성들에게 아주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며 왕은 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었다. 여자로서 처음으로 왕위에 올랐던 선덕여왕에게는 왕권강화가 절실했으며 백성들을 위함과 부합해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첨성대를 만든 정확한 년도 등 기록은 없으나 선덕여왕 재위 동안 만들었다는 삼국유사 기록과 선덕여왕 재위이후 천문관측 기록이 많은 것으로 보아 선덕여왕때 만들어진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동양 최고의 천문대로 알려진 첨성대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신라인의 우주관을 담고 있다.

2) 천문대는 산에 있어야 하는데... -  현재 천문대는 높은 산의 정상에 위치해 있다. 이는 대기오염으로 밤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고 도시의 밝은 불빛들이 별을 볼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라시대 밤하늘엔 공기의 오염도 밝은 불빛도 없었으니 평지라도 별을 관측하는데 불편한 것이 없었다. 또한 관측 결과를 임금에게 보고하고 임금은 이를 백성들에게 알려 농사에 도움을 주고자 했기에 산에 위치해 있으면 보고 시간도 늘어나고 그만큼 정보 전달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임금이 사는 궁궐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3) 첨성대는 어떻게 구성됐나? - 첨성대는 기단부, 원주부, 정자부 이렇게 3부분으로 구성이 돼 있는데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신라시대 우주관인‘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석굴암 건축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첨성대도 기단부는 네모로 원주부는 둥글게 만들어 천원지방 사상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4) 어떻게 별을 관측하나? - 지상에서 남쪽 창으로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면 12단까지 돌과 자갈로 채워져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안에서 19, 20단에 걸쳐진 정자석(井字石)에 다시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25, 26단의 정자석까지 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면 27단에 반원 모양의 널다란 돌이 놓여있고 그 위에 앉아 별을 관측했다.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여 천문시계의 구실을 하였던 기구인 혼천의(渾天儀)와 같은 관측기구를 정상에 설치하고 별을 관측해 24절기를 측정하였으며 별을 관측하던 기구를‘망통’이라 하며 관측하는 사람을‘일관’이라 불렀다.

5) 첨성대가 의미하는 것 - 첨성대는 선덕여왕 재위시설 만들어져 1300여년간 신라의 하늘을 바쳐왔는데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져 있으며 처음 만들 때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천문대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 둥근 원통형의 원주부는 모두 27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출입구로 알려진 남쪽창이 중앙 3단에 걸쳐 있으며 나머지 24단이 1년의 24절기를, 아래 위 12단이 1년 12달을, 세는 사람에 따라 돌의 개수가 362개 음력의 날수와 일치하는 등 천문관측과 관련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정자부의 각 면은 정확히 동서남북 네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며 남쪽 창은 임금이 살던 월성 쪽이다.

5) 1300여년간 무너지지 않은 이유는? - 경주는 지진대가 지나는 불안정한 지형으로 예로부터 지진이 일어났다는 기록이 많다. 그 중 한 기록은 지진으로 인해 200여명이 죽거나 다쳤다는 기록이 전해질만큼 큰 지진이 많이 일어나는데 첨성대는 어떻게 그 지진을 견딜 수 있었나? 한마디로 잘 만들었기 때문이다. 첨성대 아래로 1.5m 정도 땅을 잘 다진 후 2단의 기단을 설치하고 돌들을 원통형으로 쌓았는데 이 돌을 쌓을 때 직각으로 쌓지 않고 안쪽으로 기울게 들여쌓기를 한 후 안을 채워 무너질 수 없는 구조로 만들었다. 그리고 19, 20단과 25, 26단에 정자석을 질러 돌들을 붙잡는 역할을 해 돌을 붙이는 접착제나 이음쇠가 없이도 강한 지진에 잘 견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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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석빙고)
종목 보물 제66호
시대 조선
자료.사진출처 교과서여행
월성의 허물어진 성벽사이로 난 길을 지나 언덕 위 서쪽으로 100m 쯤 걸으면 둔덕 위에 돌로써 만든 자그마한 우진각 지붕을 얹은 환기통 3개가 보이는 곳이 조선시대에 만든 석빙고다. 동쪽은 돌과 흙담으로 가려져 있고 서쪽과 남쪽 앞은 트이어 있다.몇 년 전까지는 남쪽으로도 담이 둘러 있었다. 사람 키 정도인 1.75m 높이에 2m 너비로 된 입구에서 두 계단 내려서면, 조금 좁고 낮은 입구가 또 있어, 지금은 쇠막대기로 문을 만들어 놓았다. 그 속은 낮게 돼 있고 돌계단으로 내려간다. 문 가까이에서 한참을 들여다봐야 내부가 보..

월성의 허물어진 성벽사이로 난 길을 지나 언덕 위 서쪽으로 100m 쯤 걸으면 둔덕 위에 돌로써 만든 자그마한 우진각 지붕을 얹은 환기통 3개가 보이는 곳이 조선시대에 만든 석빙고다. 동쪽은 돌과 흙담으로 가려져 있고 서쪽과 남쪽 앞은 트이어 있다.

몇 년 전까지는 남쪽으로도 담이 둘러 있었다. 사람 키 정도인 1.75m 높이에 2m 너비로 된 입구에서 두 계단 내려서면, 조금 좁고 낮은 입구가 또 있어, 지금은 쇠막대기로 문을 만들어 놓았다. 그 속은 낮게 돼 있고 돌계단으로 내려간다. 문 가까이에서 한참을 들여다봐야 내부가 보이는데, 1,000여 개의 돌로 너비 5.76m, 높이 5.45m, 길이 12m 되게, 바닥은 흙이고, 그 위는 돌을 쌓아 천정을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朗), 즉 5개의 아치형으로 짜 만들었다. 출입구 앞 머릿돌에 음각으로, 석빙고(石氷庫)라고 씌어있다.

석빙고는 신라시대 만든 냉장고인데 임금이 여름에 시원한 음식을 먹으려고 얼음을 넣어 뒀던 얼음 창고다. 『삼국사기』에 보면, 지증왕이 505년 '겨울에 얼음을 저장해 두었다가 여름에 쓰라.'고 명령하였다 했고, 여기는 신라 궁궐터니까 이 석빙고는 신라시대 것이리라, 대부분 이렇게 알고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

신라 22대 지증왕 때, 얼음 저장에 관한 기록은 있지만 그 저장소는 알 길이 없고, 월성에 있는 이 석빙고는 조선시대 영조 때, 처음 만들었다가 3년만에 다른 곳에서 이곳으로 옮긴 것이라는 말이 맞다.

조선시대에 왜 고을마다 얼음을 저장했는가 하면, 한마디로 약재(藥材)로 쓰기 위한 것이다. 즉 여름철에 열병이 돌아 몸이 불덩이 같이 열이 날 때, 그 열을 식히기 위한 얼음찜질용이다.

또 한가지 용도는 여름에 사람이 죽었을 때, 시체의 부패를 최소화하는 물품으로 얼음을 썼다. 집안 지체의 높낮이에 따라 계급의 고하에 따라 분배량이 달랐다고 한다. 그러니 오늘날 집집마다 있는 냉장고와 같이 음식을 저장하고 차게 하는 용도로서의 생활용품이 아니었다는 거다.

한 겨울에 얼음이 가장 두껍게 얼었을 때, 일정한 두께 이상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저장했다. 석빙고 바닥에 짚을 깔고 얼음을 한벌 놓고 사이사이에 짚과 등겨를 덮고, 다시 얼음을 재는 것을 반복했다. 조금씩 녹은 물은 빨리 빠져나가도록 뒤쪽으로 가면서 바닥이 낮게 돼 있고 맨 끝에는 물 빠지는 배수구를 만들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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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신라역사과학관
위치 경주시 하동 201번지
연락처 054-745-4998
자료.사진출처 신라역사과학관
홈페이지 http://www.sasm.or.kr/
하늘엔 천상도 땅엔 왕경도 - 제 1 전시실  8세기 경 경주 왕경의 모습을 재현하여 놓은 신라왕경도, 첨성대의 내부모습의 볼 수 있는 모형을 20분의1로 축조해서 전시하고 있다. 또 천정에는 첨성대를 건립한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의 재위 기간인 서기 632~647년에 해당하는 위치의 별들을 재현시켜 놓았다. 그 외 선덕여왕 영정과 4급보상식 물시계가 복원되어 있다. 세계문화유산 석굴암 - 제 2 전시실 석굴암을 5분의1 축적으로 1개, 10분의 1 축척으로 7개를 제작하여 석굴의 내부와 외부구조, 그리고 현재의 상태와 원형의 ..

하늘엔 천상도 땅엔 왕경도 - 제 1 전시실
 8세기 경 경주 왕경의 모습을 재현하여 놓은 신라왕경도, 첨성대의 내부모습의 볼 수 있는 모형을 20분의1로 축조해서 전시하고 있다. 또 천정에는 첨성대를 건립한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의 재위 기간인 서기 632~647년에 해당하는 위치의 별들을 재현시켜 놓았다. 그 외 선덕여왕 영정과 4급보상식 물시계가 복원되어 있다.

세계문화유산 석굴암 - 제 2 전시실

석굴암을 5분의1 축적으로 1개, 10분의 1 축척으로 7개를 제작하여 석굴의 내부와 외부구조, 그리고 현재의 상태와 원형의 추정, 학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전실의 전개와, 꺾임 문제, 광창의 유무문제 등을 모두 수용하여 그것을 모형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의 소리 범종과 과학세계 - 제 3 전시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상원사 범종을 실물크기로 복원․제작하여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최고목판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복원전시하고 있으며 그밖에도 조선시대 해시계인 양부일구, 천상열차분야지도 등도 전시되어 있다.

한해의 시작점에 선 석굴암, 감은사, 문무왕릉 - 제 4 전시실

첨성대 정상부분을 실물크기로 복원, 전시하고 있으며 문무대왕 수중릉과 감은사지의 1/30축소 모형을 제작하고 신라사람들이 일년의 시작으로 여긴 동짓날 새벽에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일출탑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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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국립경주박물관
위치 경주시 일정로 186
연락처 054-740-7500
자료.사진출처 국립경주박물관
홈페이지 http://gyeongju.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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