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임시수도기념관
위치 부산광역시 서구 임시수도기념로 45 (부민동3가)
사진.자료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현재 임시수도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은 1926년 경상남도 도청 건립과 함께 도지사 관사로 지어졌으며, 임시수도기간(1950~53년)에는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따라서 건축물 자체도 근대건축물로서 역사성이 인정되어 부산시 기념물 53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국난의 시기에 대한민국 임시수도로서 소명을 훌륭하게 마친 부산시민에게 자긍심을 고취하고는 곳이다.  ..

현재 임시수도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은 1926년 경상남도 도청 건립과 함께 도지사 관사로 지어졌으며, 임시수도기간(1950~53년)에는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따라서 건축물 자체도 근대건축물로서 역사성이 인정되어 부산시 기념물 53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국난의 시기에 대한민국 임시수도로서 소명을 훌륭하게 마친 부산시민에게 자긍심을 고취하고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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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광복기념관
위치 부산광역시 서구 망양로 193번길 167
사진.자료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부산문화관광
지리적으로 일본 침략의 근거지가 된 항구도시인 부산. 부산의 독립운동은 일찍이 생활 깊숙이 침투한 일본의 횡포와 압제에 저항한 민중의 봉기였다. 2000년 광복기념일에 맞춰 개관한 부산광복기념관은 전시물과 홍보영상물을 통해 부산의 독립운동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전시실에서는 동래 3.1독립만세운동, 구포장터 독립만세운동 등 부산의 독립운동의 역사를 테마별로 정리해 전시하고 있으며, 자료검색대가 있어 순국선열들의 생애와 활동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1876년 부산항 개항 이래 크고 작은 항일투쟁의 역사..

지리적으로 일본 침략의 근거지가 된 항구도시인 부산. 부산의 독립운동은 일찍이 생활 깊숙이 침투한 일본의 횡포와 압제에 저항한 민중의 봉기였다.

2000년 광복기념일에 맞춰 개관한 부산광복기념관은 전시물과 홍보영상물을 통해 부산의 독립운동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전시실에서는 동래 3.1독립만세운동, 구포장터 독립만세운동 등 부산의 독립운동의 역사를 테마별로 정리해 전시하고 있으며, 자료검색대가 있어 순국선열들의 생애와 활동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1876년 부산항 개항 이래 크고 작은 항일투쟁의 역사를 연표와 자료를 통해 정리해 놓고 있다. 지하1층 홍보관은 120명이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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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감천문화마을
사진.자료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부산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www.gamcheon.or.kr/
감천동 문화마을은 산자락 아래 계단식으로 형성된 집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형성되어 있어 "부산의 마추픽추"라고도 불려지고 있다. 골목 곳곳에 조성된 지역예술가들의 조형작품,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로 조성된 "어둠의 집", "사진갤러리", '빛의 집'등 테마가 있는 다양한 영화 촬영장소로 "영화속 감천동", 미로처럼 얽혀진 골목길 걸어보기 등 마을 전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며 관광지다. 또한 도자기, 천연염색 체험프로그램, 아트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어 보고 ..

감천동 문화마을은 산자락 아래 계단식으로 형성된 집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형성되어 있어 "부산의 마추픽추"라고도 불려지고 있다. 골목 곳곳에 조성된 지역예술가들의 조형작품,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로 조성된 "어둠의 집", "사진갤러리", '빛의 집'등 테마가 있는 다양한 영화 촬영장소로 "영화속 감천동", 미로처럼 얽혀진 골목길 걸어보기 등 마을 전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며 관광지다. 또한 도자기, 천연염색 체험프로그램, 아트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어 보고 즐기는 체험관광지로 관광객들로부터 호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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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국제시장
위치 부산광역시 중구 국제시장2길 25
사진.자료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부산문화관광
국제시장은 부산이 한때 우리 나라에서 가장 거래규모가 큰 상업도시로서 이름을 떨치게 해주었던 상징적인 존재이다. 신창동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시장이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45년 광복과 함께였다. 광복이 되자 일본인들이 철수하면서 이른바 전시통제물자를 한꺼번에 팔아 돈을 챙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나라 최대시장이었던 부평동 공설시장 일대에 갖가지 물자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런 물자들이 드넓은 빈터였던 오늘의 국제시장 자리를 장바닥으로 만들어 자연 발생적으로 상설 시장을 이룩했던 것이 국제시장이 발생하..

국제시장은 부산이 한때 우리 나라에서 가장 거래규모가 큰 상업도시로서 이름을 떨치게 해주었던 상징적인 존재이다. 신창동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시장이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45년 광복과 함께였다.

광복이 되자 일본인들이 철수하면서 이른바 전시통제물자를 한꺼번에 팔아 돈을 챙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나라 최대시장이었던 부평동 공설시장 일대에 갖가지 물자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런 물자들이 드넓은 빈터였던 오늘의 국제시장 자리를 장바닥으로 만들어 자연 발생적으로 상설 시장을 이룩했던 것이 국제시장이 발생하게 된 배경이다.

이 국제시장 장터를 ‘도떼기시장’이라고도 하는데 시장의 규모가 크고 외국물건 등 없는 게 없을 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있는 대로 싹 쓸어 모아 물건을 흥정하는 도거리 시장이거나, 도거리로 떼어 흥정한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장사를 시작하면서 시장으로 형성되었으며 미군이 진주하면서 군용물자와 함께 온갖 상품들이 부산항을 통해 밀수입되었는데 이들 밀수입 상품들은 도떼기시장을 통해 전국 주요시장으로 공급되었다.

국제시장은 밀수 외국상품은 물론 유엔군 군수물자까지 흔하게 거래되었다. 지금은 약 650개 업체에 1,489칸의 점포가 있으며 종사하는 종업원 수는 약 1,200∼1,300명에 이른다. 서울의 남대문 시장과 비슷한 분위기지만 다른 재래시장과는 다르게 식용품, 농수축, 공산품 가게가 미로처럼 얽혀 있다.

1공구는 가방, 문구, 공예품, 2공구는 주방기구, 철기, 안경점, 3공구는 침구류, 양품점, 4공구는 포목, 주단, 양단, 주방기구, 5·6공구는 가전제품, 기계공구, 포목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방구, 주방기구, 기계공구의 의류, 전기전자류 등이 주종을 이루는 도소매업 시장이다.

인근의 대형 백화점을 비롯한 광복동 상가들과의 상권 경쟁관계에 있으나 여전히 부산 시장의 상징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로 꼽힌다.

국제시장이 유행가요인 ‘굳세어라 금순아’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피난민들의 애환이 깃든 시장으로서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래규모가 큰 시장으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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