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국립민속국악원
위치 전라북도 남원시 양림길 54 (어현동)
사진.자료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홈페이지 국립민속국악원 http://namwon.gugak.go.kr
민족의 명산 지리산과 판소리의 본고장 남원에 자리한 국립민속국악원은 전통음악문화를 호흡하고 느끼며 새로운 음악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마련된 문화공간입니다. 1992년 3월 개원한 이래 다양한 공연, 청소년 및 일반인을 위한 국악문화학교, 교사국악연수 그리고 민속악 자료발굴 및 학문적 정립을 위한 연구활동을 통하여 전통음악문화의 보존, 전승, 발전을 위한 중심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민족의 명산 지리산과 판소리의 본고장 남원에 자리한 국립민속국악원은 전통음악문화를 호흡하고 느끼며 새로운 음악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마련된 문화공간입니다. 1992년 3월 개원한 이래 다양한 공연, 청소년 및 일반인을 위한 국악문화학교, 교사국악연수 그리고 민속악 자료발굴 및 학문적 정립을 위한 연구활동을 통하여 전통음악문화의 보존, 전승, 발전을 위한 중심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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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광한루원
위치 전라북도 남원시 요천로 1447 (천거동)
사진.자료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을 표현한 우리나라 제일의 누원이다. 원래 이곳은 조선 세종 원년(1419)에 황희가 광통루라는 누각을 짓고, 산수를 즐기던 곳이었다. 1444년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광통루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이곳을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후 ‘광한루’라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1461년 부사 장의국은 광한루를 보수하고, 요천의 맑은 물을 끌어다가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었다. 호수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을 표현한 우리나라 제일의 누원이다.

원래 이곳은 조선 세종 원년(1419)에 황희가 광통루라는 누각을 짓고, 산수를 즐기던 곳이었다. 1444년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광통루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이곳을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후 ‘광한루’라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1461년 부사 장의국은 광한루를 보수하고, 요천의 맑은 물을 끌어다가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었다.

호수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가로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날 단 한번 만난다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를 연못 위에 설치하였다. 이 돌다리는 4개의 무지개 모양의 구멍이 있어 양쪽의 물이 통하게 되어 있으며, 한국 정원의 가장 대표적인 다리이다.

1582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광한루를 크게 고쳐 짓고, 은하수 연못 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방장·영주섬을 만들어 봉래섬에는 백일홍,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영주각’이란 정자를 세웠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왜구들의 방화로 모두 불타버렸다.

현재의 광한루는 1639년 남원부사 신감이 복원하였다. 1794년에는 영주각이 복원되고 1964년에 방장섬에 방장정이 세워졌다. 이 광한루원은 소설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인연을 맺은 장소로도 유명하여, 1920년대에 경내에 춘향사를 건립하고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에는 춘향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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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만인의 총
위치 전라북도 남원시 만인로 3 (향교동)
사진.자료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만인의총은 정유재란(1597)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민. 관. 군 1만여 의사들의 호국의 얼이 서려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1592)때 호남을 침범하지 못해 승리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왜군은 1597년 11만 대군으로 다시 침략, 적의 우군은 전주성을, 좌군과 수군 5만 6천은 남원성을 공략하였다. 조정에서는 남원성을 사수하기 위해 전라병사 이복남이 이끄는 1천여 군사와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3천 병사로 하여금 남원성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과부적으로 주민 6천여 명을 포함한 1만..

만인의총은 정유재란(1597)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민. 관. 군 1만여 의사들의 호국의 얼이 서려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1592)때 호남을 침범하지 못해 승리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왜군은 1597년 11만 대군으로 다시 침략, 적의 우군은 전주성을, 좌군과 수군 5만 6천은 남원성을 공략하였다. 조정에서는 남원성을 사수하기 위해 전라병사 이복남이 이끄는 1천여 군사와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3천 병사로 하여금 남원성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과부적으로 주민 6천여 명을 포함한 1만여 의사들은 분투 끝에 장렬하게 모두 순절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피난에서 돌아온 성민들은 시신을 한 무덤에 모시고 1612년(광해4년) 충렬사를 건립하였다. 몇 번의 이전을 거쳐 호국선현 유적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정부의 지원과 전 도민의 정성 어린 헌수로 1979년 정화를 마치고 충렬사에는 50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만인의총에서는 매년 9월 26일에 만인의사에 대한 제향을 올려, 그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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