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한옥마을
전주에는 대한민국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전주한옥마을이 있다. 전주한옥마을은 가장 한국적인 문화를 찾아볼 수 있는 천년전주의 랜드마크다. 전주한옥마을에 오면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다. 지금 어느 시대에 있는지를 착각할 정도로 고풍스럽다.700여채의 한옥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전주한옥마을은 전주 풍남동 일대에 자리한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한옥촌으로, 전국 유일의 도시 한옥군이다. 경기전, 오목대, 향교 등 중요 문화재와 문화시설이 산재한 전주한옥마을은 전주만의 독특한 문화공간이다. 전통문화를 체험하며,..

전주에는 대한민국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전주한옥마을이 있다. 전주한옥마을은 가장 한국적인 문화를 찾아볼 수 있는 천년전주의 랜드마크다. 전주한옥마을에 오면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다. 지금 어느 시대에 있는지를 착각할 정도로 고풍스럽다.
700여채의 한옥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전주한옥마을은 전주 풍남동 일대에 자리한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한옥촌으로, 전국 유일의 도시 한옥군이다. 경기전, 오목대, 향교 등 중요 문화재와 문화시설이 산재한 전주한옥마을은 전주만의 독특한 문화공간이다. 
전통문화를 체험하며, 옛 선비들의 멋과 풍류를 느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전주한옥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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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국립무형유산원
국립무형유산원은 세계적인 무형문화유산을 보존하고 후손에 전승하기 위하여 설립된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융복합 전시실에서 다양한 전시를 진행하고 있고 무형유산 공연을 운영하고 콘텐츠를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무형유산 기록관리, 교육 연구, 국내·외 연계 및 협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세계적인 무형문화유산을 보존하고 후손에 전승하기 위하여 설립된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융복합 전시실에서 다양한 전시를 진행하고 있고 무형유산 공연을 운영하고 콘텐츠를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무형유산 기록관리, 교육 연구, 국내·외 연계 및 협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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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경기전
위치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풍남동3가)
사진.자료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조선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신 곳이다. 태종은 1410년 전주·경주·평양에 태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모시고 어용전이라 하였다. 그 후 태종 12(1412)에 태조 진전이라 부르다가 세종 24년(1442)에 와서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으로 달리 이름을 지었다.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고쳐 지었다. 건물의 구성은 본전·헌·익랑 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내삼문과 외삼문으로 둘렀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신 곳이다.
태종은 1410년 전주·경주·평양에 태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모시고 어용전이라 하였다. 그 후 태종 12(1412)에 태조 진전이라 부르다가 세종 24년(1442)에 와서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으로 달리 이름을 지었다.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고쳐 지었다. 건물의 구성은 본전·헌·익랑 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내삼문과 외삼문으로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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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풍남문
위치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3길 1 (전동)
사진.자료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조선왕조가 개국하자 전주는 풍패지향으로 중시되어 태조 원년(1392)에 완산유수부로 승격되면서 호남지역을 관할하는 전라도의 수부가 된다. 중국 진 왕조 이후 중국 천하를 재통일한 인물이 한고조 유방이다. 그는 풍패(지금의 강소성 패현) 출신이었다. 전주는 조선 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의 관향. 그래서 유방의 고향 풍패에 견주어 과거에는 전주를 흔히 풍패향, 풍패지향이라 불렀다. 풍남문이라는 이름에는 풍패향 전주의 남문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전주성의 남문이 바로 풍남문이다. 후백제의 왕도였으며 조선 왕조의 발상지인 ..

조선왕조가 개국하자 전주는 풍패지향으로 중시되어 태조 원년(1392)에 완산유수부로 승격되면서 호남지역을 관할하는 전라도의 수부가 된다. 중국 진 왕조 이후 중국 천하를 재통일한 인물이 한고조 유방이다. 그는 풍패(지금의 강소성 패현) 출신이었다. 전주는 조선 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의 관향. 그래서 유방의 고향 풍패에 견주어 과거에는 전주를 흔히 풍패향, 풍패지향이라 불렀다. 풍남문이라는 이름에는 풍패향 전주의 남문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전주성의 남문이 바로 풍남문이다. 후백제의 왕도였으며 조선 왕조의 발상지인 전주를 상징하는 풍남문은 유서 깊은 성문으로 근래에 복원하여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전주의 명물이다.

이러한 풍남문은 고려 공양왕 원년 때(1388년) 최유경 관찰사가 축조하였으나, 영조 때(1734년) 조현명 관찰사가 부성을 크게 개축하였다고 하며 이 때 동.서.남.북문 등이 헐려져 없어지고 3층으로 된 남문만이 남았던 것이 근래에 고증에 의해 복원되었다. 영조 43년 3월(1767년)에 크게 불타버렸는데, 관찰사 홍낙인이 성루를 복구하고 명칭을 풍남문으로 바꾸었다. 풍남문이 겪은 큰 사건은 정유재란 때 왜적이 전주부성으로 침공하자 성을 굳게 지키고 있다가 전세가 불리하여 퇴각하였고, 이 때 왜군이 며칠을 머무르면서 불태워버린 일이 있었으며, 그 후 황토현에서 대승을 거둔 동학군이 고창, 함평, 원평을 거쳐 노도와 같이 전주로 진격하여 풍남문에서 격전 끝에 관군을 물리치고 입성하여 마침내 일시적이나마 화약을 맺기도 한 의의가 큰 성문이다.

풍남문 종각에서 파루를 쳐서 부성 안에 조석을 알렸던 종소리는 이제는 서울 보신각 종처럼 제야(1월1일 0시)에 종소리를 울려 이 고장의 새해 새 희망을 안겨주고,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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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전동성당
위치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51 (전동)
사진.자료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 천주교 최초 순교자의 恨 맺힌 사형터 * 전주 전동성당은 사적 제288호로 조선시대 천주교도의 순교터에 세워졌다. 이 건물은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했던 전라북도 전주시 전동 풍남문(豊南門) 밖에 지어진 성당이다. 조선시대의 전주는 전라감영이 있었으므로 천주교회사에서 전동은 자연히 순교지의 하나가 됐다. 정조 15년(1791)에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 순조 원년(1801)에 호남 첫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윤지헌(프란치스코) 등이 이곳에서 박해를 받고 처형됐다. 신유박해(1801년) 때는 이곳에서 ..

* 천주교 최초 순교자의 맺힌 사형터 *
전주 전동성당은 사적 제288호로 조선시대 천주교도의 순교터에 세워졌다. 이 건물은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했던 전라북도 전주시 전동 풍남문() 밖에 지어진 성당이다. 조선시대의 전주는 전라감영이 있었으므로 천주교회사에서 전동은 자연히 순교지의 하나가 됐다. 정조 15년(1791)에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 순조 원년(1801)에 호남 첫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윤지헌(프란치스코) 등이 이곳에서 박해를 받고 처형됐다. 신유박해(1801년) 때는 이곳에서 유항검()과 유관검 형제가 육시형을, 윤지헌, 김유산, 이우집 등이 교수형을 당했다. 이들의 순교의 뜻을 기리고자 1891년(고종 28)에 프랑스 보두네(Baudenet) 신부가 부지를 매입하고 1908년 성당 건립에 착수해 1914년에 완공했다. 이 성당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졌으며 서울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에게 설계를 맡겨 23년 만에 완공한 것이다.

* 호남지역에서 최초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 *
회색과 붉은색 벽돌을 이용해 지은 건물은 겉모습이 서울의 명동성당과 비슷하며 초기 천주교 성당 중에서 매우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국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처음 이 성당은 천주교 순교지인 풍남문 밖에 세웠으나 후에 현재의 자리에 확장해 지은 것이다. 호남지역에서 최초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장방형의 평면에 외부는 벽돌로 쌓았으며 중앙과 좌우에 비잔틴 양식의 종탑이 있다. 내부 천장은 아치형이며 양옆의 통로 위 천장은 십자 형태로 교차된 아치형이다. 성당건축에 사용된 일부 벽돌은 당시 일본 통감부가 전주읍성을 헐면서 나온 흙을 벽돌로 구웠으며 전주읍성의 풍남문 인근 성벽에서 나온 돌로 성당의 주춧돌을 삼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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