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도산서원
종목 사적 제170호
시대 조선
자료.사진출처 안동시청 문화관광
이 서원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을 향사(享祀)하는 도산서원이다. 선생은 1561년(명종 16)에 도산서당 건립하고 학문연구와 인격을 도야하였는데, 선생이 타계하자 문인들의 발의에 의해 서당이 있던 자리에 서원을 건립키로 하였다. 1572년(선조 5)에는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에 모실 것을 결정하였으며 1574년부터 서원을 짓기 시작하여 1576년에 완공하였다. 선조는 도산서원이란 현판을 사액하였는데 그 편액은 당시의 제1인자라고 손꼽히던 명필 한호(韓濩)의 글씨이다...

이 서원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을 향사(享祀)하는 도산서원이다. 선생은 1561년(명종 16)에 도산서당 건립하고 학문연구와 인격을 도야하였는데, 선생이 타계하자 문인들의 발의에 의해 서당이 있던 자리에 서원을 건립키로 하였다.

1572년(선조 5)에는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에 모실 것을 결정하였으며 1574년부터 서원을 짓기 시작하여 1576년에 완공하였다. 선조는 도산서원이란 현판을 사액하였는데 그 편액은 당시의 제1인자라고 손꼽히던 명필 한호(韓濩)의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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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월영교
위치 경상북도 안동시 상아동, 성곡동 일원
길이 387m
자료.사진출처 안동시청 문화관광
이 명칭은 시민의 의견을 모아 댐건설로 수몰된 월영대가 이곳으로 온 인연과 월곡면, 음달골이라는 지명을 참고로 확정되었다. 낙동강을 감싸듯 하는 산세와 댐으로 이루어진 울타리 같은 지형은 밤하늘에 뜬 달을 마음속에 파고 들게 한다.천공으로부터 내려온 달을 강물에 띄운 채 가슴에 파고든 아린 달 빛은 잊혀진 꿈을 일깨우고 다시 호수의 달빛이 되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으려 한다. 월영교는 이런 자연풍광을 드러내는 조형물이지만, 그보다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념하고자 ..

이 명칭은 시민의 의견을 모아 댐건설로 수몰된 월영대가 이곳으로 온 인연과 월곡면, 음달골이라는 지명을 참고로 확정되었다. 낙동강을 감싸듯 하는 산세와 댐으로 이루어진 울타리 같은 지형은 밤하늘에 뜬 달을 마음속에 파고 들게 한다.

천공으로부터 내려온 달을 강물에 띄운 채 가슴에 파고든 아린 달 빛은 잊혀진 꿈을 일깨우고 다시 호수의 달빛이 되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으려 한다. 월영교는 이런 자연풍광을 드러내는 조형물이지만, 그보다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념하고자 했다.

먼저 간 남편을 위해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한 켤레 미투리 모양을 이 다리 모습에 담았다. 그들의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을 영원히 이어주고자 오늘 우리는 이 다리를 만들고 그 위에 올라 그들의 숭고한 사랑의 달빛을 우리 의 사랑과 꿈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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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석빙고
종목 보물 제305호
시대 조선
자료.사진출처 문화재청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창고이다. 특히 이 석빙고는 낙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은어를 국왕에게 올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 영조 13년(1737)에 지어졌다. 형태는 동·서로 흐르는 낙동강 기슭의 넓은 땅에 강줄기를 향하여 남북으로 길게 누워 있으며, 입구는 특이하게 북쪽에 옆으로 내었다.안으로 계단을 따라 들어가면 밑바닥은 경사져 있으며, 중앙에는 물이 강으로 흘러가도록 만든 배수로가 있다. 천장은 길고 크게 다듬은 돌들을 무지개모양으로 틀어올린 4개의 홍예(虹霓)를 세워 무게를 지탱..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창고이다. 특히 이 석빙고는 낙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은어를 국왕에게 올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 영조 13년(1737)에 지어졌다. 형태는 동·서로 흐르는 낙동강 기슭의 넓은 땅에 강줄기를 향하여 남북으로 길게 누워 있으며, 입구는 특이하게 북쪽에 옆으로 내었다.

안으로 계단을 따라 들어가면 밑바닥은 경사져 있으며, 중앙에는 물이 강으로 흘러가도록 만든 배수로가 있다. 천장은 길고 크게 다듬은 돌들을 무지개모양으로 틀어올린 4개의 홍예(虹霓)를 세워 무게를 지탱하도록 하고, 각 홍예 사이는 긴 돌들을 가로로 채워 마무리하였다. 천장의 곳곳에는 환기구멍을 두었는데, 이는 안의 기온을 조절하기 위하여 설치한 것으로 바깥까지 연결하였다.

전체적으로 규모는 큰 편은 아니나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특히 석빙고는 그 위치가 매우 중요한데,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여 지금은 본래의 위치보다 높은 곳으로 옮겨왔다. 이전에는 바로 옆에 강이 흘러서 얼음을 운반하기가 아주 쉬웠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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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선성현객사
종목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29호
시대 조선
자료.사진출처 문화재청
고려와 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했던 관아건물이다. 조선 숙종 38년(1712)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전해오는데, 안동댐 건설로 1976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一자형 구조를 지니고 있는 이 객사는 앞면 11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벽돌이 깔려 있는 가운데 5칸은 중심공간인 정당으로, 온돌방·대청·툇마루로 이루어진 양옆 3칸씩의 익실보다 지붕이 한층 높게 되어 있다중심공간인 정당에서는 원래 궐패를 모셔놓고 초하루·보름에 대궐이 있는 쪽을 향하여..

고려와 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했던 관아건물이다. 조선 숙종 38년(1712)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전해오는데, 안동댐 건설로 1976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一자형 구조를 지니고 있는 이 객사는 앞면 11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벽돌이 깔려 있는 가운데 5칸은 중심공간인 정당으로, 온돌방·대청·툇마루로 이루어진 양옆 3칸씩의 익실보다 지붕이 한층 높게 되어 있다

중심공간인 정당에서는 원래 궐패를 모셔놓고 초하루·보름에 대궐이 있는 쪽을 향하여 절을 하였고, 양 옆의 익실은 사신이나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숙소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객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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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종목 국보 제16호
시대 통일신라
자료.사진출처 문화재청
전탑(塼塔)이란 흙으로 만든 벽돌을 이용하여 쌓아 올린 탑으로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법흥사에 속해있던 탑으로 추정된다.탑은 1단의 기단(基壇)위로 7층의 탑신(塔身)을 착실히 쌓아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각 면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8부중상(八部衆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세워놓았고, 기단 남쪽 면에는 계단을 설치하여 1층 몸돌에 만들어진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향하도록 하였다. 탑신은 진한 회색의 무늬없는 벽돌로 쌓아 올렸으며, 지붕돌은 위아래 모두 계단모양의 층단을 이루는 일반적인 전탑양식과는 달리, ..

전탑(塼塔)이란 흙으로 만든 벽돌을 이용하여 쌓아 올린 탑으로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법흥사에 속해있던 탑으로 추정된다.

탑은 1단의 기단(基壇)위로 7층의 탑신(塔身)을 착실히 쌓아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각 면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8부중상(八部衆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세워놓았고, 기단 남쪽 면에는 계단을 설치하여 1층 몸돌에 만들어진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향하도록 하였다. 탑신은 진한 회색의 무늬없는 벽돌로 쌓아 올렸으며, 지붕돌은 위아래 모두 계단모양의 층단을 이루는 일반적인 전탑양식과는 달리, 윗면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보아 기와를 얹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의 윗면을 시멘트로 발라 놓아 아쉬움을 남기는 이 탑은 7층이나 되는 높은 층수에 높이 17m, 기단너비 7.75m의 거대한 탑임에도 매우 안정된 자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내에 남아있는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에 속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또한 지붕에 기와를 얹었던 자취가 있는 것으로 보아 목탑을 모방하여 전탑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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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댐
주소 안동시 성곡동 산 164-19
4대강 유역 종합개발계획의 하나로 이루어진 다목적 댐으로서, 정상에서의 수려한 경관과, 낚시꾼들에겐 입질 좋은 포인트로 안동댐에서 월척을 건졌다는 소식을 곳곳에서 접할 수 있을 만큼 낚시터로도 유명하다.댐 하단에 민속촌, 민속박물관 외 선착장이 있어 유람선 이용도 가능하다. - 규모높 이 : 83m, 길 이 : 612m, 폭 : 360m, 만수면적 : 51.5㎢, 저수용량 : 1.248백만㎥, 발전용량 : 9만kw, 홍수조절 : 110백만㎥, 용수공급 : 926백만㎥- 연혁. 1971년 착공. 1976년 준공 ..

4대강 유역 종합개발계획의 하나로 이루어진 다목적 댐으로서, 정상에서의 수려한 경관과, 낚시꾼들에겐 입질 좋은 포인트로 안동댐에서 월척을 건졌다는 소식을 곳곳에서 접할 수 있을 만큼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댐 하단에 민속촌, 민속박물관 외 선착장이 있어 유람선 이용도 가능하다.
 

- 규모
높 이 : 83m, 길 이 : 612m, 폭 : 360m, 만수면적 : 51.5㎢, 저수용량 : 1.248백만㎥, 발전용량 : 9만kw, 홍수조절 : 110백만㎥, 용수공급 : 926백만㎥

- 연혁
. 1971년 착공
. 1976년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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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민속박물관
위치 경상북도 안동시 민속촌길 13
연락처 (054)821-0649
홈페이지 http://www.adf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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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임청각(고성이씨종택)
위치 경상북도 안동시 임청각길 63 (법흥동)
사진.자료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살림집, 임청각 * 임청각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살림집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500년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안동 고성이씨의 대종택이다.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의 여섯째 아들인 영산현감 이증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여기에 자리잡음으로써 입향조가 되었다. 이후 이증의 셋째아들로 중종 때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지은 별당형 정자이다. “임청각”이라는 당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구절에서 따온 것이며 귀거래사 구절 중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

*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살림집, 임청각 *
임청각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살림집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500년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안동 고성이씨의 대종택이다.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의 여섯째 아들인 영산현감 이증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여기에 자리잡음으로써 입향조가 되었다. 이후 이증의 셋째아들로 중종 때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지은 별당형 정자이다.

“임청각”이라는 당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구절에서 따온 것이며 귀거래사 구절 중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기도 하노라.’라는 싯구에서 ‘임(臨)자’와 ‘청(淸)자’를 취한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임청각은 귀래정(歸來亭) 영호루(映湖褸)와 함께 고을 안의 명승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임청각은 건축한 조선 중기의 종택 건물과 별당형 정자인 군자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99칸의 집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70여 칸만 남아 있다.

* 임청각의 별당, 군자정 *
군자정은 목조 건물로는 보기 드물게 임진왜란을 겪은 오래된 건물이다. 군자정 대청에는 이현보(李賢輔) 등의 시판(詩板)이 걸려 있으며, 안동 임청각의 현판은 퇴계 이황(李滉)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군자정은 ‘丁’자형의 누각으로 된 별당 건축으로,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된 대청이 남향으로 앉아 있고, 그 왼쪽에 온돌방 4칸이 연접하여 ‘ㅏ’자 모양을 취하고 있다. 온돌방의 한 부분은 각주를 세워 굴도리를 얹은 간단한 구조로, 홑처마로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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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회룡포
낙동강으로 합류되는 물길인 내성천이 휘감아 만들고 있는 육지 속의 섬, 회룡포이다. 멋진 풍경으로 반짝이는 하얀 모래 백사장을 감싸며 돌아가는 옥빛 물길의 아름다운 모습이 인상적인 곳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감입곡류하천으로 영월의 청령포 함께 유명한 곳이 회룡포이다. 회룡포에서 육지로 이어지는 길목은 폭이 80m에 수면에서 15m 정도 높이로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넘치면 정말 섬 아닌 섬이 되어 오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회룡포로 바로 들어가 보는 것도 좋지만 먼저 전망대에 올라보도록 하자. 전망대로 오르는 ..

낙동강으로 합류되는 물길인 내성천이 휘감아 만들고 있는 육지 속의 섬, 회룡포이다. 멋진 풍경으로 반짝이는 하얀 모래 백사장을 감싸며 돌아가는 옥빛 물길의 아름다운 모습이 인상적인 곳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감입곡류하천으로 영월의 청령포 함께 유명한 곳이 회룡포이다. 회룡포에서 육지로 이어지는 길목은 폭이 80m에 수면에서 15m 정도 높이로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넘치면 정말 섬 아닌 섬이 되어 오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회룡포로 바로 들어가 보는 것도 좋지만 먼저 전망대에 올라보도록 하자.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보통 장안사를 거쳐 회룡대로 오르는 길을 택하는데 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거리이다. 내려와서 회룡포 안으로 들어가 보는데 멀리 돌아가는 목으로 난 차도를 이용해 들어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회룡마을 끝에 놓인 다리를 건너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동네 사람들이 아르방다리로 부르는 간이 다리인데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걸을 때마다 덜컹거린다 해서 ‘뿅뿅다리’라고도 부른다. 회룡포 안 의성포마을은 열 가구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로 앞으로는 강이 돌아가고 뒤로는 야트막한 언덕이 놓인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준서와 은서가 어린 시절을 보내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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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용문사
문화재로는 용문사 윤장대(輪藏臺:보물 684), 예천 용문사 교지(보물 729),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및 목각탱(木刻幀:보물 989), 예천 용문사 대장전(大藏殿:보물 145), 용문사 자운루(경북문화재자료 169)가 있으며, 그밖에 현존하는 당우로 진영각(眞影閣), 명부전(冥府殿), 응진전(應眞殿), 회전문(廻轉門), 범종루, 강원, 천불전(千佛殿), 일주문, 요사채, 두운암(杜雲庵)과 1984년 화재로 모두 불탔다가 복원된 보광명전(普光明殿), 응향각(凝香閣), 단하각, 해운루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용문사 윤장대(輪藏臺:보물 684), 예천 용문사 교지(보물 729),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및 목각탱(木刻幀:보물 989), 예천 용문사 대장전(大藏殿:보물 145), 용문사 자운루(경북문화재자료 169)가 있으며, 그밖에 현존하는 당우로 진영각(眞影閣), 명부전(冥府殿), 응진전(應眞殿), 회전문(廻轉門), 범종루, 강원, 천불전(千佛殿), 일주문, 요사채, 두운암(杜雲庵)과 1984년 화재로 모두 불탔다가 복원된 보광명전(普光明殿), 응향각(凝香閣), 단하각, 해운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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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초간정
이 건물은 『대동운부군옥, 大東韻府群玉』을 저술한 초간 권문해(權文海 1534~1591)가 세우고 심신을 수양하던 곳이다. 조선 선조(宣祖) 15년(1582)에 처음 지어진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것을 중건 하였으나, 인조(仁祖) 14년(1636)에 다시 불타는 등 수난을 거듭했는데, 지금의 건물은 초간의 현손이 1870년 중창한 것으로 기암괴석과 주변의 경관이 조화를 이루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정자채는 사주문을 통하여 들어가며 뒤쪽과 오른쪽은 절벽을 이루고 있다. 자연기단 위에 주초를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정면 3칸 ..

이 건물은 『대동운부군옥, 大東韻府群玉』을 저술한 초간 권문해(權文海 1534~1591)가 세우고 심신을 수양하던 곳이다. 조선 선조(宣祖) 15년(1582)에 처음 지어진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것을 중건 하였으나, 인조(仁祖) 14년(1636)에 다시 불타는 등 수난을 거듭했는데, 지금의 건물은 초간의 현손이 1870년 중창한 것으로 기암괴석과 주변의 경관이 조화를 이루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정자채는 사주문을 통하여 들어가며 뒤쪽과 오른쪽은 절벽을 이루고 있다. 자연기단 위에 주초를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집이다. 정면 3칸 중 앞면의 좌측 2칸은 온돌방을 배치하고 나머지 4칸은 통간의 대청으로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측면은 사면으로 난간을 설치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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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금당실마을
수려한 산과 맑은 물을 자랑하고 싶은 소백산 자락의 아늑한 전통마을 금당실! 네티즌 여러분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마을에는 금방이라도 닿을 듯 한 푸른 하늘과 두 손 가득히 떠서 먹을 수 있는 맑은 시냇물 겨울이면 아이들의 운동장이 되는 길게 뻗은 논과 밭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서울이나 대구의 중심지처럼 화려한 조명아래 요즘 아이들이 주로 찾는 패스트푸드점이나 놀이공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충효마을이라는 이름 아래 남녀노소를 불문한 자연과 문화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

수려한 산과 맑은 물을 자랑하고

싶은 소백산 자락의 아늑한 전통마을 금당실!

네티즌 여러분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마을에는 금방이라도 닿을 듯 한 푸른 하늘과

두 손 가득히 떠서 먹을 수 있는 맑은 시냇물

겨울이면 아이들의 운동장이 되는 길게 뻗은 논과 밭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서울이나 대구의 중심지처럼

화려한 조명아래 요즘 아이들이 주로 찾는 패스트푸드점이나 놀이공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충효마을이라는 이름 아래 남녀노소를 불문한 자연과 문화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많은 전통적인 문화재가 산재되어 있습니다.

또한 개인주의와 핵가족화로 잊히고 있는 이웃사촌간의 소중함,

지나가는 나그네라도 물 한 모금과 따뜻한 아랫목을 내어줄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을입니다.

-사진.내용은 금당실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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