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종목 사적 제504호
자료.사진출처 문화재청
해인사를 두고 있는 가야산은 높이가 해발 1,430m이며, 우뚝하고 기이한 모습으로 우리나라 8경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신령스러운 산이다. 이곳의 돌과 물, 붉은 소나무숲은 다른 절이나 명산에서도 보기 힘든 자연경관을 갖고 있다.해인사는 가야산의 서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신라 애장왕 2년(802)에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순응과 이정, 두 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부터 고종 때까지 2백여 년간 7차례나 불이 나서 건물 대부분이 타버렸고, 지금의 건물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에 세운 것들이다.현재 절 안에는 고..

해인사를 두고 있는 가야산은 높이가 해발 1,430m이며, 우뚝하고 기이한 모습으로 우리나라 8경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신령스러운 산이다. 이곳의 돌과 물, 붉은 소나무숲은 다른 절이나 명산에서도 보기 힘든 자연경관을 갖고 있다.

해인사는 가야산의 서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신라 애장왕 2년(802)에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순응과 이정, 두 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부터 고종 때까지 2백여 년간 7차례나 불이 나서 건물 대부분이 타버렸고, 지금의 건물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에 세운 것들이다.

현재 절 안에는 고려 고종 23년(1236)에서 1251년까지 15년간에 걸쳐 완성된 호국안민의 염원이 담긴 고려대장경판(국보 제32호)이 있다. 그 밖에 장경판전(국보 제52호), 반야사원경왕사비(보물 제128호), 석조여래입상(보물 제264호), 원당암다층석탑 및 석등(보물 제518호), 합천 치인리마애불입상(보물 제222호)이 있다.

뛰어난 가야산의 자연경관과 역사의 숨소리가 살아 있는 해인사 지역의 문화유산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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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종목 국보 제32호
시대 고려
자료.사진출처 문화재청
대장경은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말하며, 불교경전의 총서를 가리킨다. 이 대장경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에 걸쳐 간행되었다. 이것은 고려시대에 간행되었다고 해서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하고,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8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이것을 만들게 된 동기는 고려 현종 때 새긴 초조대장경이 고종 19년(1232)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 대장경을 만들었으며, 그래서 재조대장경이라고도 한다. 몽고군의 침입..

대장경은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말하며, 불교경전의 총서를 가리킨다. 이 대장경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에 걸쳐 간행되었다. 이것은 고려시대에 간행되었다고 해서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하고,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8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을 만들게 된 동기는 고려 현종 때 새긴 초조대장경이 고종 19년(1232)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 대장경을 만들었으며, 그래서 재조대장경이라고도 한다. 몽고군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하는 뜻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장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새긴 것이다. 새긴 곳은 경상남도 남해에 설치한 분사대장도감에서 담당하였다.

원래 강화도 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던 것을 선원사를 거쳐 태조 7년(1398) 5월에 해인사로 옮겨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재 해인사 법보전과 수다라장에 보관되어 있는데 일제시대에 조사한 숫자를 보면 81,258장이지만 여기에는 조선시대에 다시 새긴 것도 포함되어 있다. 경판의 크기는 가로 70㎝내외, 세로 24㎝내외이고 두께는 2.6㎝ 내지 4㎝이다. 무게는 3㎏ 내지 4㎏이다.

구성을 보면 모두 1,496종 6,568권으로 되어있다. 이 대장경의 특징은 사업을 주관하던 개태사 승통인 수기대사가 북송관판, 거란본, 초조대장경을 참고하여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아 대장경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이 대장경판은 현재 없어진 송나라 북송관판이나 거란의 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수천만 개의 글자 하나 하나가 오자·탈자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다는 점에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크며,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문화재이다. 또한 2007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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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종목 국보 제52호
시대 고려
자료.사진출처 문화재청
가야산 중턱에 자리잡은 해인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3년(802)에 지은 사찰로, 왕후의 병을 부처의 힘으로 치료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이며, 8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법보사찰이라고도 부른다.장경판전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8만여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해인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 되었다.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조선 세조 3년(1457)에 크게 다시 지었고 성종 19년(1488)에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다시 지어 ‘보안당&..

가야산 중턱에 자리잡은 해인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3년(802)에 지은 사찰로, 왕후의 병을 부처의 힘으로 치료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이며, 8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법보사찰이라고도 부른다.

장경판전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8만여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해인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 되었다.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조선 세조 3년(1457)에 크게 다시 지었고 성종 19년(1488)에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다시 지어 ‘보안당’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산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임진왜란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광해군 14년(1622)과 인조 2년(1624)에 수리가 있었다.

앞면 15칸·옆면 2칸 크기의 두 건물을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남쪽 건물은 ‘수다라장’이라 하고 북쪽의 건물은 ‘법보전’이라 한다. 서쪽과 동쪽에는 앞면 2칸·옆면 1칸 규모의 작은 서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긴 네모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장식 요소는 두지 않았으며, 통풍을 위하여 창의 크기를 남쪽과 북쪽을 서로 다르게 하고 각 칸마다 창을 내었다. 또한 안쪽 흙바닥 속에 숯과 횟가루,소금을 모래와 함께 차례로 넣음으로써 습도를 조절하도록 하였다.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설계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점 등으로 인해 대장경판을 지금까지 잘 보존할 수 있었다고 평가 받고 있다.

해인사장경판전은 15세기 건축물로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대장경판과 고려각판을 포함하여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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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개실마을 점필재종택
종목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62호
시대 조선
자료.사진출처 문화재청
이 건물은 선산 김씨(善山 金氏) 문충공파(文忠公派)의 종택으로 안채는 1800년경에 건립, 1878년에 중수하였고, 사랑채는 1812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문충공(文忠公) 점필재 김종직 (金宗直, 1431~1492)은 고려 말 정몽주?길재의 학통을 이은 아버지 김숙자(金叔滋)로부터 학문을 익히면서 조선시대 도학의 정맥을 계승하였다. 조선 성종(成宗)때에는 도승지(都承旨), 예조참판(禮曹參判) 등을 역임하면서 왕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연산군(燕山君) 때 무오사화(戊午士禍)로 관직이 발탁되고 무덤이 파해쳐지는 수모를 당하기도..

이 건물은 선산 김씨(善山 金氏) 문충공파(文忠公派)의 종택으로 안채는 1800년경에 건립, 1878년에 중수하였고, 사랑채는 1812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충공(文忠公) 점필재 김종직 (金宗直, 1431~1492)은 고려 말 정몽주?길재의 학통을 이은 아버지 김숙자(金叔滋)로부터 학문을 익히면서 조선시대 도학의 정맥을 계승하였다. 조선 성종(成宗)때에는 도승지(都承旨), 예조참판(禮曹參判) 등을 역임하면서 왕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연산군(燕山君) 때 무오사화(戊午士禍)로 관직이 발탁되고 무덤이 파해쳐지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으나 중종반정(中宗反正) 때 신원되었다.

종택은 마을 뒷산을 등지고 완만한 경사를 이룬 터에 남동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안채, 사랑채, 중사랑채, 고방, 대문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 ‘튼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건물 내에는 점필재 문적?유품 및 종가문서가 보관되어 있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一'자형 맞배집이다. 좌측에 2칸 사랑방을 두고 우측을 전면이 개방된 대청으로 꾸몄으며, 사랑방 좌측에는 방과 작은부엌을 앞뒤로 배치했다.

상부가구는 3량가로 대량 위에 원형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고 있다. 안채는 정면 8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이다. 평면은 2칸 대청의 좌측에는 전면에 쪽마루를 둔 큰방과 부엌, 우측에는 작은방과 골방을 두었다. 구조는 3량가로 사다리꼴 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게 했다. 안채 우측의 중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안마당을 등지고 동향하고 있다.

평면은 중사랑방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대청, 우측에는 앞뒤로 온돌방과 광을 둔 형태이다. 고방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우진각집이다. 고방채의 가운데 2칸은 광이고, 우측은 방앗간이었다고 하며, 좌측 마굿간 뒤에는 변소가 있다. 사당에는 김종직 선생의 불천위(不遷位) 신주(神主)를 모셨다. 구조는 5량가로 네모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제형 동자주를 놓아 종도리를 받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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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우륵박물관
위치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 쾌빈리 162
연락처 054)950-6071
자료.사진출처 대가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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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대가야박물관
위치 경북 고령군 고령읍 대가야로 1203
연락처 054)950-6071
자료.사진출처 대가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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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장기리 암각화
종목 고령 장기리 암각화
시대 선사시대
자료.사진출처 문화재청
알터 마을 입구에 있는 높이 3m, 너비 6m의 암벽에 새겨진 바위그림이다. 바위그림은 암각화라고도 하는데, 암각화란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이나 바람을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것을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주는 자료로 볼 수 있다.바위그림은 동심원, 십자형, 가면모양 등이 있는데, 동심원은 직경 18∼20㎝의 삼중원으로 총 4개가 있다. 동심원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태양신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십자형은 가로 15㎝, 세로 12㎝의 ..

알터 마을 입구에 있는 높이 3m, 너비 6m의 암벽에 새겨진 바위그림이다. 바위그림은 암각화라고도 하는데, 암각화란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이나 바람을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것을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주는 자료로 볼 수 있다.

바위그림은 동심원, 십자형, 가면모양 등이 있는데, 동심원은 직경 18∼20㎝의 삼중원으로 총 4개가 있다. 동심원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태양신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십자형은 가로 15㎝, 세로 12㎝의 불분명한 사각형안에 그려져 있어 전(田)자 모양을 하고 있다. 이는 부족사회의 생활권을 표현한 듯하다. 가면모양은 가로 22∼30㎝, 세로 20∼40㎝로 머리카락과 수염같은 털이 묘사되어 있고, 그 안에 이목구비를 파서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것으로 부적과 같은 의미로 새긴 듯하다. 상징과 기호를 이용해 제단을 만들고 농경을 위해 태양신에게 소원을 빈 농경사회 신앙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근처에 있는 금산령 석기 유적과 고인돌 유적에서 출토되는 석기와 토기를 통해 청동기시대 후기(B.C. 300∼0)에 만들어진 암각화로 짐작된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신앙과 사회생활 등 선사문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조각사와 회화사 연구에도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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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도동서원
종목 사적 제488호
시대 조선
자료.사진출처 문화재청
도동서원은 1605년(선조38) 지방 유림에서 한훤당 김굉필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서원으로 조선중기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전형적 배치형식과 강당과 사당의 공포양식 및 담장 구성수법 등에서 건축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강당·사당과 이에 딸린 담장은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원 전면에 위치한 신도비, 은행나무 등을 포함한 서원 전역을 국가지정문화재(사적)으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하고있다...

도동서원은 1605년(선조38) 지방 유림에서 한훤당 김굉필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서원으로 조선중기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전형적 배치형식과 강당과 사당의 공포양식 및 담장 구성수법 등에서 건축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강당·사당과 이에 딸린 담장은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원 전면에 위치한 신도비, 은행나무 등을 포함한 서원 전역을 국가지정문화재(사적)으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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